“서장훈이 대고참이라면 나는…” 예능 샛별된 농구대통령, 허재는 허재다
9월 27, 2019

중앙일보

레이저 눈빛 허재, 아이들 앞에선 “허허허”

2019. 05. 07

농구 아카데미를 연 허재(가운데) 전 국가대표 감독이 아이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감독 시절 흰머리가 많았던 허재는 ’아이들과 함께 하니 젊어진 것 같다“며 웃었다. [김경록 기자]

5월 5일 어린이날, ‘농구 대통령’ 허재(54)와 손재우(12·경기도 파주시) 군이 나눈 대화 내용이다. 지도자 시절 선수들에게 매서운 ‘레이저 눈빛’을 날리던 허재 전 대표팀 감독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허허허” 웃었다.

허재 감독은 지난 3월 경기 고양시 재활스포츠센터에 ‘허재 농구아카데미’를 열었다. 천하의 허재가 엘리트 농구 선수가 아닌 평범한 초·중·고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수업은 금·토·일요일 사흘 동안 진행한다. 20명으로 구성된 각 반마다 1시간30분씩 아홉 클래스를 가르친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지난 5일에도 허 감독은 아이들의 레이업슛을 몸으로 막으면서 열정적으로 농구를 가르치고 있었다. 농구교실을 연지 석 달도 채 안됐는데 회원은 벌써 200명을 넘어섰다. 허 감독은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에게 피자를 사주고, 가방도 선물로 줬다.

엘리트 선수들을 놔두고 어린이를 위한 농구교실을 시작한 이유를 물어봤다. 허재는 “프로팀 감독도 해봤고, 대표팀 감독도 해봤다. 10년 넘게 쉼없이 달려왔는데 이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농구교실을 돕고 있는 프로농구 TG삼보 센터 출신 정경호(49)코치는 “허재 감독님은 수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환원 차원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허 감독은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합숙생활을 했다. 마치 군대 같은 분위기였다. 감독님이 무서워서 항상 긴장하면서 지냈다. 돌이켜보면 ‘좀 더 즐겁게 농구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털어놨다.

농구교실 아이들에게 허재 감독이 선수 시절 활약했던 유튜브 영상을 보여줬다. 조의종(15·고양시 탄현동)군은 “겉모습만 보면 그냥 옆집 아저씨 같은데 슛과 돌파가 엄청나다”며 놀라워했다. 농구교실을 돕고 있는 중앙대 선수 출신 정성구 코치는 “농구대잔치 시절을 기억하는 학부모들은 허재 감독님에게 달려가 사인도 받고 셀카도 찍는다”고 전했다.

 

허재 감독의 두 아들은 현재 프로농구에서 활약 중이다. 원주DB의 슈팅가드 허웅(26), 부산 KT의 포인트가드 허훈(24)이다. 허재는 “아들에겐 제대로 농구를 가르친 적이 없다. 골프로 치면 레슨 프로가 드라이브샷 자세를 한 번 잡아주듯 슛 자세나 드라이브인 동작을 잠깐 봐주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웅이는 나와 슛자세가 비슷하다. 훈이는 눈치가 빨라서 어깨너머로 배웠다”고 말했다.

 

허웅·허훈 형제는 지난 4일 아버지가 운영하는 농구교실을 깜짝 방문해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의 사인 요청에 응하면서 원포인트 레슨도 해줬다. 허재 감독은 요즘 종종 농구교실 근처의 사무실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그만큼 아이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오는 14일엔 고양시 발달장애인 선수 10명을 데리고 일본 팀과 경기를 하기 위해 후쿠오카에 다녀올 계획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참 좋네요. 애들과 함께 코트에서 뛰다보면 내가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출처: 중앙일보] 레이저 눈빛 허재, 아이들 앞에선 “허허허”